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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훈 조교사가 떠난다

작성일| 2017-12-23 11:17:35 조회수| 4414

조교사가 되려면 험난한 기수시절을 무사히 통과하거나 험난한 관리사의 고난을 극복해야한다. 서울경마공원의 대다수 조교사가 정통 코스인 기수 시절을 거쳐 조교사의 길로 접어든다. 김 양선, 정 지은, 하 재흥 등을 필두로 54명 가운데 절반을 넘는 31명의 조교사가 기수 출신이다. 기수양성학교 교관 출신의 신우철, 김호 조교사도 있었지만 최근 많아진 관리사 출신의 조교사들이 두각을 보이고 있다. 관리사 출신들이 대거 투입되면서 양축의 한 축을 담당하며 의외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좋은 선배들이 많아질수록 후배 조교사들이 귀감을 삼아 뒤를 따르겠고, 후배 조교사들은 한국경마의 내일을 밝게 만들어 갈 수 있겠다. 한국경마의 내일을 빛낼 수 있으려면 많은 명마도 발굴해야겠지만 좋은 조교사의 발굴이 또한 필요하겠다. 명마는 그야말로 한두 해 명멸하다 추억 속으로 사라질 뿐이다. 많은 명마의 탄생은 좋은 조교사들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에 한국경마가 앞으로 더 멀리 나가려면 좋은 조교사가 많아야 한다. 국제화시대를 열고있는 한국경마에 새바람은 외국인 조교사의 진입이다. 이미 부산의 울줄리 조교사는 성공적인 사례다.

1987년은 한국경마에 있어 중요한 한 해였다. 박 태종 기수가 배출된 해이기도 하지만 그해에 13기 기수들이 탄생했다. 한국경마가 최전성기를 이루었던 2000년대 초중반을 13기 기수들이 주역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그들은 조교사가 되어서도 입지를 탄탄히 굳혔다. 그 해에 기수시절을 거쳐 관리사 출신 조교사인 지용훈 조교사가 마방을 개업하였다. 당시는 단일 마주제였기 때문에 공평하게 주어지는 경주마를 분배받아 출발하기 때문에 요즘처럼 조교사가 직접 발 벗고 나서서 경주마 위탁을 도모하려 애쓰지 않았다.

오직 경주마 사양관리에만 힘쓰면 성공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지만 마사회의 갑질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요즘은 마주의 눈치를 보면서 비유를 맞춰야 마방에 경주마 자원이 풍부하지만 그 때는 마사회 담당부서가 조교사들 위에 군림하던 시절이었다. 그 때는 마사회 직원들이 손에 말똥을 묻히는 경마창출자들을 블루라며 그들 앞에 똥폼을 잡았던 때였다. 지용훈 조교사는 동생 지용철이 기수에서 조교사로 전환한 1986년 이듬해인 1987년에 함께 형제조교사로 출발했다.

어느새 30년이 후딱 흘렀다. 어느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둥구나무처럼 묵묵히 조교사의 길을 걸온지 30년이 흘렀다. 뚝섬시절 기수로서 시작해 한국경마의 과천시대의 산증인으로 살아온 그가 오늘과 내일 경주를 끝으로 조금 앞서 은퇴를 한다. 지난 5월부터 쉬쉬 은퇴를 준비해왔지만 실제로 2018년에 9조 마방의 문패를 내린다. 설마 얼마 남지 않은 정년을 지켜주지 않을까 기대했다. 청천벽력이다. 몇 해 전 발병했던 페암을 극복하고 건강을 되찾아 정상적으로 마방을 이끌어 ‘최강실러’를 탄생시켰던 올 연말경주를 끝으로 은퇴를 한다.

9조 마방은 명마 ‘쾌도난마’의 산실이었다. ‘쾌도난마’가 이전 이미 국산마에게 핸디캡을 주지 않고 외산마와 대등하게 겨루던 아득한 시절 명마 ‘이화령’을 탄생시켜서 1996년 ‘뚝섬배’에 우승을 거머쥐었다. 30년을 돌아와 이제는 국산마의 -2kg핸디가 떨어져 나갔지만 당시 국산마 부재의 시대에도 감량이점이 없이 싸웠기 때문에 국산명마의 탄생이란 기대하기조차 어려웠다. 아주 어려웠던 시기에 그는 위업을 달성했을 뿐 아니라 시대의 명마 ‘쾌도난마’까지 배출해 절정의 시기를 보냈다. 경주마를 가장 오래도록 경주로에서 달리게 했던 것으로도 이름을 알렸다. 그러기 위해 9조 마방은 까다로운 마방으로 불렸고 가장 일찍 불이 켜지는 마방이라고 알려졌다.

그가 재임 중 1991년 ‘스포츠서울배’에 첫 대상경주에서 우승을 거머쥔 후 ‘쾌도난마’로 ‘문화일보배’, ‘YTN배’, ‘뚝섬배’,에 이어 ‘마사회장배’를 두 번이나 석권했다. ‘가야산성’으로 ‘대통령배’까지 쓸어 담으며 빛나는 전성기를 거쳐 마지막 대상경주 우승은 2015년 ‘최강실러’로 'SBS배‘를의 우승이었다. 지난주까지 통산 9191전을 치르면서 800승의 위업을 달성한 그는 경마인생을 통해 많은 교훈을 후배들에게 남긴다.

그는 앞산에 움직이지 않는 바위처럼 우직하고 변함없는 사람이다. 얼마나 변하지 않는가 하면 2009년에 기승계약을 체결한 정평수 기수와 어제까지 변함없이 같은 솥의 밥을 먹고 있다. 칠락팔락하는 바닥에서 정말 움직이지 않는 마음이 아니면 쉽지 않은 일이다. 마주들이 경주마 성적에 따라 일희일비하며 주문쉽게 흔들리는 바닥에 전혀 흔들리지 않고 바위처럼 그는 자기 자리에 있었다. 그렇게 있으면서 명기수를 배출시킨다. 불운한 이찬호기수다. 마사회 직원 폭행으로 옷을 벗고 나갔다가 복귀했으나 다시 지난 11월 기승정지를 당한다. 그가 배출한 명기수가 불운을 겪고 있다.

그는 옳다고 믿으면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어느 마주가 유명 기수의 기승을 주문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조교사 가운데 첫 번째로 꼽히겠다. 박태종시대를 거쳐 문세영시대를 지나지만 소속조 기수만을 고집하며 단 한번의 우승을 위해서는 그들의 기승이 허용되지 않았다. 한 때 장제사로 일을 할 때의 장인 정신을 기수 기용에 접목시켰다. 두드려 맞추면 경주마는 어느 기수와도 우승을 거머쥘 수 있다는 확고한 정신을 실현해 마방의 식구들에게 신뢰를 심어 주었다. 경주마가 만들어 지면 우승을 가져 올 수 있다는 신념이 800승고지에 올라설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경주마 사양관리에 그만의 정신세계는 후배들의 귀감이 되겠다. 그가 서울경마공원을 떠난 후에 누군가 마방을 이어받는다면 마방을 이어받는 것보다 그의 정신을 이어 받는다면 늦을 지라도 성공하는 마방을 만들어 갈 수 있겠다. 2000년대 초반 마방취재를 드나들 때 그가 얼마나 진정성 있는 ‘호스맨’인가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아픈 경주마를 혹사하지 않았고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기대보다 못한 말몰이로 주눅이 들어 돌아온 기수에게 끊임없이 기회를 준 것은 경주마를 완성시킬 수 있었던 자신감 때문이었다. 지용훈 조교사를 명예조교사로 추천한다.  

애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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