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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팅의 상한선

작성일| 2019-02-22 14:11:04 조회수| 770

어학사전에서 인권을 '사람이면 누구나 태어나면서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로 풀이한다. 백과사전에서는 몇 날밤을 두고 읽어야 할 방대한 양의 설명이 따로 있다. 가운데 '1인권은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하는 권리라는 점에서 보편성을 지니고 있고, 2인권은 사람으로 태어난 사람은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권리라는 점에서 고유성을 지니고 있으며, 3인권은 사람이 일시적으로 누리는 것이 아니라 항구적으로 누리는 권리라 항구성이 있으며, 4인권은 정부권력 등 외부의 침해를 당하지 아니한다는 뜻에서 불가침성이 있다.' 인권에 대해 잘 요약하는 대목이다. 인권에 대한 얘기가 서울경마장 모래주로처럼 방대하다면 그 한 알 만큼 인용한다. 인권은 어떤 외부에서도 침해할 수 없는 불가침성에 대한 규정이 베팅의 상한선에 필요할 것 같아 따왔다.

1980년 초부터 경마장을 다니기 시작했으니 어느덧 40년이 가까워진다. 어느 가을 친구 따라 처음 갔던 뚝섬경마장은 별다른 세상이었다. 운집한 군중이 내 지르는 함성을 아랑곳 않고 경주로를 질주하는 경주마들! 스피드와 기수들이 입고 있는 멋진 유니폼에 매료되었다. 경주마들이 결승선을 통과하자 함성은 약속이나 한 듯 뚝 그쳤고 희비가 엇갈린 객석의 표정들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표정에서는 허탈과 기쁨이 양 갈래로 쏟아져 나왔다. 그 때는 미세먼지도 없이 가을하늘이 푸르다 못해 시퍼렇다. 제주도 맑은 바닷물이 뚝섬경마장 공중으로 흘렀다. 그 투명한 공중으로 던져진 폐마권들이 왜 그리 나를 슬프게 했던지......진하게 여운을 남겼다. 그 풍경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아  요즘도 경주마가 결승선을 통과한 후 뒤돌아서서 객석의 표정을 바라보곤 한다.

그 때의 마권은 당시 통용되던 버스회수권처럼 정액이 인쇄돼 베팅금액에 따라 잘라 팔았다. 베팅금액이 커지면 마권 장수가 많아졌다. 상한선이란 괴물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고 본인의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한 자유롭게 마권을 구매할 수 있었다. 지금처럼 마권구매가 한 경주에 10만원어치만을 사야한다는 인권의 침해가 없었다. 나라가 쓸데없는 것까지 관리하려 하지 않았다. 유신시절을 지나 군사정권 시절이었지만 마권구매에 대해서만은 자유였다. 마사회장으로는 늘 퇴역한 군 장성급이 임명되었던 시절이었지만 마권구매는 규제하지 않았고 경마팬들의 인권을 존중해주던 시절이었다.

그랬던 것을 1984년 한국경마는 전 세계경마 어디에도 없는 구매상한선을 만들어 냈다. 한번에 50만원어치만 사라고 규제를 시작하더니 다음해 1985년에는 금액을 30만원으로 낮췄다. 그러더니 한해 뒤에는 20만원으로 낮췄다. 과열베팅을 방지해 건전경마를 이룩하겠다는 신성한(?) 슬로건을 내걸고. 그렇게 10년쯤 지나 과천으로 경마장을 옮기고 난 1994년엔 그도 많다며 지금의 10만원으로 상한선을 더 낮췄다.

한국경마가 절정기를 향해 마구 달릴 때였다. 팬들이 자고나면 늘어나는 호황을 누릴 쯤 지금의 구관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신관을 신축하였고, 한국경마는 몰려드는 팬들을 바라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마냥 좋아했다. 끝이 없을 줄 알았다. 상한선이 만들어졌지만 객장에서는 지키지 않았고 유명무실했다. 고액 팬들은 이창구저창구를 옮겨가면서 사고 싶은 만큼 마권을 구매할 수 있었으니 제 돈을 쓰면서 바쁘기는 오지게  바빴다. 눈 가리고 아웅 이었다. 한 창구에 단골이 되면 몇 장이고 사고 또 살 수 있었다.

급속한 IT산업의 발전으로 자동발매기가 창구의 매표원을 대신하면서는 마권 사기가 더욱 쉬워졌다. 하지만 긴 세월이 흐르면서 팬들은 스스로 깨달았다. 경마는 분수에 맞는 베팅만이 살길이라는 것을. 즐기는 팬들은 경마장에 남았고, 마권사기가 힘들어진 고액 팬들은 보너스를 듬뿍 얹어주면서 유혹하는 불법경마 쪽으로 서서히 이동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에 마사회도 한 몫을 했다. 서둘러 온라인 중계를 할 제도적 장치를 했어야했는데 그나마 시행했던 것마저 중지를 당한 것은 마사회의 잘못이었다. 경마를 시행하는 모든 나라가 시행하는 온라인경마를 미리 법적 장치를 마련하지 못해서 중도에 중지 당하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떠나는 고액 팬들을 잡지 못했다. 언론의 발표로는 불법경마의 매출이 마사회  매출의 세배가 넘는다니! 국가적 손실이 엄청나게 크다. 소를 잃고 아직도 외양간을 못 고치고 있는 한국경마는 2000년 초 절정기를 지나면서 줄곧 내리막길이다.

마침 올해 3분기에 전자카드 장기 이용자 한해 1회 상한선을 상향조정하겠다는 보도가 나왔다. 26년간 10만원으로 조였던 마권구매 상한선을 느슨하게 풀어보겠단다. 신원이 확인된 이용자에 한해 30만원으로 올리겠단다. 간통법이 사라질 때 많은 국민들이 우려가 있었다. 온통 세상이 없어질 간통법 때문에 불륜으로 물들지 않을까 걱정들이 컸었다. 그런 법이 언제 있기나 싶게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불륜은 더 이상 활보하지 않았고, 평온해졌다. 싸움도 말리는 이가 있으면 더하려 들 듯이 나라에서 그냥 놔두면 될 것을 규제하려 들면서 문제를 만든다. 그냥 두면 모든 것이 저절로 평상으로 돌아갈 것들을.

과연 마이카드 고객의 1회 베팅 금액을 올렸을 때 팬들이 누리게 될 혜택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분수에 맞게 베팅하면서 경마를 즐겼던 팬들은 강 건너 불구경일 뿐이다. 그냥 하던 대로 내 주머니에 맞춰서 즐기면 그만이다. 다만 여유가 있어 시원하게 베팅하려는 오대들에게는 희소식이 된다. 불법 경마판에서는 999배당이 나와도 100배로 쳐 줄뿐 아니라 크게 한 번 맞추면 도망쳐 버리기 때문에 이래저래 피해가 컸었다. 그런 분들이 이제 떳떳하게 마사회의 대접을 받으며 양지에서 베팅하게 된다는 것, 순기능이 되겠다. 그뿐일까. 경마를 통해 얻어지는 이익금이 사회복지에 투명하게 쓰여 진다는 전제하에서는 고액베팅을 통해 자긍심을 느낄 수도 있다. 물론 자기관리가 힘든 팬들에게는 화를 불러 올 역기능 또한 크겠지만 언제까지 나라의 관리를 받으면서 경마를 즐길 것인가는 이참에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구매상한선을 올리기 전에 먼저 필요한 것은 온라인경마의 부활이다. 이에 맞춰 함께 실시한다면 한국경마는 제2의 호시절을 맞을 수도 있겠다. 마사회가 독자적으로 구매상한선을 올릴지 못 한다. 아직 많은 절차가 남아 있다. 농림수산식품부와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와 협의를 거쳐야 가능해진단다. 또 한참은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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