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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치일(國恥日)

작성일| 2014-04-26 10:13:57 조회수| 26302

“ 2014년 4월16일은 대한민국의 국치일(國恥日) !”

 

김서형은 1475년(성종6) 충청병마절도사를 지내면서 수시로 훈련을 핑계로 군졸을 징발하여 사냥을 즐겼으며. 때마다 이를 맞이하는 인근 고을의 수령에게 부담이 되곤 했다.그러던중 가야산에서 사냥을 하던중 금산에 불을 놓아 국가에서 배양하는 소나무를 불타게 하고 개심사(開心寺)의 건물까지 전소하게 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다.

 

[결과]

『성종실록(成宗實錄)』에 김서형은 감찰 정찬(鄭儹)의 계본(啓本)에 의거하여 불을 놓아 산을 태우고 개심사를 연소시킨 죄로 사헌부로부터 결장(決杖) 100대와 도(徒) 3년을 판결 받았으나, 왕이 다만 임명장만을 거두도록 명하였다. 한편 이 사건이 조정에 알려지기 전 개심사 승려가 충청도관찰사 성윤문(成允文)에게 장고(狀告)하였으나, 이를 숨겨주었음이 밝혀져 같이 추국 받았다. 이 사건은 추후 김서형이 복직되어 충주목사(忠州牧使), 영안남도절도사(永安南道節度使) 등에 진출할 때마다 매번 논쟁거리가 되어 관리의 자질을 시험받게 되었다. 한편 전소된 개심사 건물은 1484년(성종 15)에 중창하였다.

 

[의의와 평가]

조선 전기 이 지역 지방관의 재임 실태와 조선 전기 가야산의 화재 및 개심사 전소 사건의 전말을 확인할 수 있다.

 

인천호프집 대형참사 사건

――――――――――――――

 

 

1999년 10월 30일 오후 7시경 인천광역시 중구 인현동에 위치한 4층 상가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로 건물 2층 라이브호프집과 3층 그린당구장에 있던 10대 중·고교생들과 20대 초반의 청소년 등 손님 52명이 불에 타거나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또 71명이 연기에 질식되거나 화상을 입고 중앙길병원, 인하대학교 부속병원, 인천의료원 등 인천지역 8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이 날 불은 이 건물 지하에 있는 히트노래방의 내부수리 공사장에서 처음 발생하여 계단을 타고 2층과 3층으로 번졌다. 이 때문에 있지도 않은 비상구와 비상계단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던 많은 청소년들이 화를 당하였다.

 

불은 긴급출동한 소방차 15대와 구급차 19대, 소방관 180명과 경찰관 160명에 의하여 35분 만에 진화되었다.그런데 많은 중·고교생들이 희생된 호프집은 불법영업을 일삼아 온 문제업소였으며, 이 업소의 실질적인 소유주인 정성갑이 단속기관과 밀착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단순한 화재사건 이상으로 커졌다.

 

 화재가 일어난 직후 종적을 감춘 정성갑은, 1999년 11월 3일 오후 충남 보령시 대천역 앞에서 경찰에 자수하였다.한편, 언론은 정성갑의 전 관리인으로부터 입수한 비밀수첩에는 1998년 말부터 1999년 1월 중순까지 인천 중부경찰서, 파출소 등에 얼마씩을 지출했다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결국 인천호프집화재사건은 사회의 안전불감증과 공무원의 부정부패로 인한 인재(人災)가 여전함을 다시 확인해 주는 사고였다.

 

씨랜드참사사건

――――――――-

1999년 씨랜드 유치원생 화재 사건 당시 아이를 잃고 훈장을 반납한 뒤 뉴질랜드로 이민을 떠난 김순덕 전 필드하키 국가대표 선수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입을 열었다.

 

김순덕씨는 “저희 때와 다를 게 아무것도 없다”라고 했다. 이어 “피해자 가족들을 정말 일으켜 세워주실 분들은 국민들 밖에 없다”라며 “그분들의 힘이 되어줘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김순덕씨는 2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전화연결에 초대됐다. 사회자는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꼭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고 하셔서 초대했다”고 했다. 15년 전 씨랜드 화재 당시 6살 아이를 잃은 김순덕씨는 “저희 (씨랜드) 유족 분들과 통화를 했는데, 저희 때와 다를 게 아무 것도 없이, 변한 게 없구나라고 말씀하시더라”라고 했다.

 

 

김순덕씨는 씨랜드 참화 일년 뒤 가족과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다. 그가 통화했다는 사람들은 서울에 남아있는 씨랜드 유족이다. 당시 씨랜드 화재로 유치원생 19명과 교사 4명이 숨졌다. 당시 정부는 화재 원인을 모기향이라고 지목했는데, 유가족은 모기향으로 불이 붙을 수 없다며 반발했다.

 

 

김순덕씨는 “실종자 가족 분들과 지금 세월호 유가족들은 정말 정말 실망감과 자괴감에 빠져있을 것”이라며 “그분들을 정말 일으켜 세워주실 분들은 국민들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아닌 국민뿐이란 뜻이다. 이어 “사고 처리를 잘 할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께서 정말 다 지켜봐 주셨으면 감사하겠다”라고 했다. ‘정말’이란 말을 연이어 쓰며 간절함을 나타냈다.

 

 

김순덕씨는 다시 한번 “그분들의 힘이 되어 줘야 됩니다”라면서 “그 일이 다름아닌 다 우리들 일이니까요”라고 말했다. 국가대표 영광에 훈장까지 반납하고 뉴질랜드로 이민을 떠난 일에 대해 김순덕씨는 “모든 부모님들이 아마 저와 똑같은 심정일 것”이라며 “저희 아이들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빠른 시일 내에 종결됐다”라고 밝혔다.

 

 

자신이 아이한테 해준 게 하나도 없어서, 해줄 수 있는 힘이 없어서, 그래서 훈장을 반납하고 이민을 가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김순덕씨는 세월호 참사 소식에도 “부부가 얼굴만 바라보면서 온 몸에 힘이 빠지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이 넋 놓고 보고만 있었다”라며 “그러고 난 다음부터는 멘붕”이라고 했다. 이어 안산 단원고 피해 학부모들에 대해 “그 부모님들 저희와 똑같이 겪을 고통을 생각하니까.

 

 

그리고 또 저희도 똑같은 그 15년 전의 상황으로 다시 가서 똑같이 겪고 있다”라며 “그래서 사실 서울에서 (온) 전화를 받는 게 무섭다”라고 말했다.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사고는 1999년 6월 30일 경기도 화성군에 위치한 청소년수련원인 씨랜드에서 불이 나면서 유치원생 19명과 인솔교사 및 강사 4명 등 23명이 숨진 사고다.

 

 

모기향으로 인한 화재로 추정되는데 신고가 1시간이나 늦었고 소방서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무엇보다도 씨랜드 수련원은 불법 임시건물이었고 화재경보기는 불량품이었다.

 

 

 

이순신장군의 난중일기중에서....

 

 

"맑았다. 저녁에 사람이 천안에서 와서 집안 편지를 전했다. 열어보기도 전에 몸이 먼저 떨리고 정신이 어지러웠다. 정신 없이 뜯어보니 겉에 '통곡(慟哭)' 두 글자가 써 있는 걸 보고 (아들) 면이 전사한 것을 알았다.

 

 나도 모르게 간담이 떨려 목 놓아 통곡했다. 하늘이 어찌 이렇게 어질지 않단 말인가.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것만 같다. 하늘과 땅이 캄캄하고 밝은 해도 빛을 잃었다.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남달리 영특해 하늘이 너를 이 세상에 머물게 두지 않은 것이냐. 내가 지은 죄 때문에 화가 네 몸에 미친 것이냐. 지금 내가 살아 있은들 장차 뉘게 의지한단 말인가. 부르짖으며 슬퍼할 뿐이다. 하룻밤을 보내기가 한 해 같구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정유년(1597년) 10월 14일자 난중일기 내용 일부다. 사지를 넘나들며 천하를 호령하던 맹장도 자식을 앞세우는 참척(慘慽)의 슬픔 앞에서는 목놓아 울부짖는 일개 범부일 뿐이었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온 국민이 참척의 슬픔에 잠겨 있다. 자식 가진 부모 중 누가 이번 사고를 남의 일로 여길 수 있을까.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고로 10여명의 대학생이 건물더미와 눈 속에 갇혀 사망한 지 불과 두 달 만에 꽃 같은 고교생들이 또다시 차가운 바닷물 속에 갇혀 있다.

 

 

청백리 (淸白吏)

 

[명사] 재물에 대한 욕심이 없이 곧고 깨끗한 관리

고사리풀을 뜯어먹을 정도의 청백한 관리를 청백리로 표현한 말 입니다.

 

 

관행(官行)이 아닌 관행(棺行)일수 밖에 없었던 일련의 사건으로 대한민국은 총체적 국난을 맞고 있습니다. 천재가 아닌 인재의 책임은 부패한공직자 들의 한심한 작태를 한눈에 보는듯한 명약관화한 진실의 눈일수 밖에는 없는 현실입니다.

 

 

지금도 진도 앞바다에 수많은 사람이 수장되어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 입니다.

관행.절차.안전불감증이 일궈낸 세월호참사는 영원히 대한민국 사람의 가슴에 통한의 아픔의 기억될 국치일(國恥日)로 기억의 언저리에 남아있을것 입니다.

 

아직도 진도에서 생사를 모르는 자식의 고통을 함께하는 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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